안녕하세요, 후배 작가님! 🧑‍💻✍️

2주 만에 다시 드리는 편지입니다.

경북 일대에 산불이 나서, 마음을 무거웠던 지난 며칠이었는데요.
다행히 비가 내려서, 그래도 조금은 안도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

반갑게 내리는 비처럼 이 편지가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애쓰고 계실 누군가에게 작은 쉼표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 짤막한 작법 ‘플래시백’ – 쓸 것이냐, 말 것이냐. 언제, 어떻게?
🎞 대본 분석 <이터널 선샤인> – 작법을 넘어서 도착하는 그 어딘가.
🏆 공모전 동향 - 제 13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

📢 짤막작법 – 플래시백! 쓸 것인가, 말 것인가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영화는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다.”

이번 주는 플래시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플래시백은 굉장히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막혀 있던 인물의 감정을 한 번에 보여줄 수도 있고요, 과거의 진실을 슬픈 음악과 함께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효과만 놓고 보면 이보다 편리하고 감정적인 장치도 드믑니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너무 편해서, 너무 자주 쓰게 됩니다. 🫠

대본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이제 어떻게 될까? 흥미진진한데?’ 싶은 순간,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10년 전 추억이 등장합니다. 슬픈 짝사랑 혹은 갑작스런 엄마의 실종 사건... 맞습니다. 다 중요하고 다 아픈 과거입니다. 그런데, 정말 꼭 거기서 보여줘야 했을까요?

플래시백은 마치 과거로 가는 순간이동 포탈 같습니다. 그런데 이 포탈을 너무 자주 작동시키면 관객은 ‘지금’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습니다. 현재를 보여줘야 할 때 자꾸 과거로 튀는 대본은, 현재를 견디지 못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플래시백을 쓰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지금 이 인물의 감정을 현재 장면 안에서 표현할 수는 없는가?
2️⃣ 플래시백이 아니라도 이 인물의 과거를 알릴 방법은 없는가?
3️⃣ 플래시백이 현재 서사의 리듬을 깨지는 않는가?

대본을 쓰다 보면 ‘이 과거를 안 보여주면 시청자가 이해 못 할 거야!’ 싶은 순간이 오긴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장면은 대부분 관객들이 눈치로 다 알아차립니다. 관객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감정선에도 민감합니다. 굳이 다 보여주지 않아도 눈치를 챕니다. 가끔은, 눈치를 못 챌 수도 있겠지만요. 괜찮습니다. 사실, 그게 드라마입니다. 😌

❗ 플래시백을 잘못 썼을 때의 문제점

📌 첫째, 리듬이 무너집니다.
지금 잘 흘러가고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플래시백 하나로 통째로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 긴장감이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 갑자기 과거로 튀면 관객 입장에서는 ‘뭐야, 왜 갑자기?’ 하는 감정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둘째, 감정이 약해집니다.
감정이라는 건 현재의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야 더 강하게 전달됩니다. 그런데 과거로 훅 가버리면, 정작 지금 벌어지는 사건의 감정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중요한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설명하느라 갑자기 플래시백이 들어가면, 관객은 감정선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지죠. 😶‍🌫️

📌 셋째, 설명이 많아집니다.
플래시백은 편리한 설명 도구이기 때문에, 자꾸 사용하다 보면 이야기 전체가 설명 중심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이랬고, 저래서 저랬고” 식의 구조가 반복되면, 관객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드라마는 체험이지, 리포트가 아니니까요.

🌟 좋은 플래시백의 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쓴 플래시백은 전언했듯 매우 효과적입니다. ✨

🎯 첫째, 감정을 응축시켜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인물이 왜 이렇게까지 무너지는지를, 짧은 과거 장면 하나로 보여주면, 관객은 말보다 더 강하게 그것을 느낍니다.

🎯 둘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플래시백은 캐릭터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상처, 결정적인 사건, 성장 과정 등을 보여주면 관객은 그 인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 셋째, 이야기 구조에 힘을 실어줍니다.
현재와 과거를 병치하거나 교차 편집하면 서사에 입체감이 생깁니다. 주제 의식이나 감정선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효과도 있고요. 

단,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적절한 타이밍’입니다.

⏰ 그렇다면 언제 플래시백을 써야 할까요?

✔️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이 현재 장면만으로는 설득되지 않을 때
✔️ 캐릭터의 핵심적인 과거 사건이 이야기 진행에 꼭 필요할 때
✔️ 과거와 현재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룰 때 (ex. 수사물에서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

많은 경우, 플래시백 장면은 사실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니, 안 쓰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사실 많습니다. 과거는 늘 유혹적이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

🛠️ 어떻게 써야 할까?

📍 짧고 명확하게! – 설명용으로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가능한 한 짧고, 시각적으로 인상 깊게!
📍 현재 서사의 흐름을 끊지 않도록! – 과거를 보여줄 땐, 지금 장면과 감정적으로 이어지게 배치해야 관객이 이탈하지 않습니다.
📍 돌아오기도 깔끔하게! – 플래시백에서 현재로 복귀하는 순간이 어정쩡하면 관객은 순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수 있습니다.

플래시백은 망치가 아니라, 정교한 핀셋처럼 써야 하는 장치입니다. 잘 쓰면 감정도, 구조도, 캐릭터도 다 살아나지만, 무심코 휘두르면 애써 쌓은 감정선이 끊기고, 이야기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

그러니까,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씁시다. 플래시백은 소중하니까요. 💫

후배 작가님, 방금 전에 제가 “플래시백은 망치가 아니라 핀셋처럼 써야 한다”라고 말씀드렸지요? 😊 원칙이라면 원칙이겠지만, 언제나 걸작은 원칙을 넘어서며 등장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바로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이 영화는 작법 교과서라면 줄줄이 빨간펜 X표를 맞았을지도 모를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시간의 순서 따위는 우습게 무시하고, 그래서 인과관계는 너무 복잡하며, 플래시백이 무려 ‘기억 삭제 중에 벌어지는 시청각적 심상 묘사’라는 이름으로 불쑥불쑥 등장합니다.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작법의 원칙들이 무용하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작법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일까요?

<이터널 선샤인>의 플래시백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회상 장면”과는 다릅니다. 주인공 조엘이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삭제당하며 거꾸로 되짚는 구조입니다. 관객은 이 과정을 따라가며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짤막작법에서 이야기했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도구로서의 플래시백”,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로서의 과거 회상”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이터널 선샤인>의 플래시백은 작법의 원칙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현재 장면의 감정을 과거의 파편으로 입체화하고, 감정선을 끈질기게 따라가면서도 관객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기존 작법에서 경고하는 “지나치게 복잡한 시간 전환”,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어려운 구조”라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연출과 편집, 감정의 정확한 리듬으로 그 위험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절대 이렇게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며, 저는 다시 작법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작법은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원칙들을 배우는 이유는, 나중에 그 원칙을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물론 당연히 그것을 넘어설 만큼 잘 이해하고는 있어야겠지요.

<이터널 선샤인>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원칙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원칙을 넘어설 만큼 진심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후배 작가님, 오늘도 작법을 열심히 익히세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조용히 밀어두고, 세상 어디에도 없을 당신만의 플래시백을 써봅시다. 핀셋이든 망치든, 정말 중요한 건 그걸 쥔 우리의 손이라는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