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만약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고, 영화처럼 기적적으로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져 반드시 인류 재건에 필요한 사람 100명 정도를 태워야 한다면, 예술가는, 작가는, 미술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그 배에 절대 타지 못할 거라고 말이지요.

아마 저는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바이올리니스트들처럼, 떨어지는 소행성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글을 끄적이고 있을 겁니다. 별로 필요없는 일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후배 작가님의 질문에 아는대로 대답도 드려볼겸,

오늘의 짤막작법은 '대사'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대사, 어떻게 써야 할까요?

사람들은 보통 “꼭 필요한 대사만 써라”라고 합니다. 영화과를 다녔던 저도 무성영화의 온갖 표현들을 익히며, 대사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배웠습니다.

일단, 필요한 대사란 무엇일까요?

시각매체라는 특성상, 영화나 드라마는 “보여주는” 예술이기에,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 없는 부분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가 큽니다. 또한 "너무 말이 많으면 템포가 늘어진다”는 시각도 있지요. 시청자가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을 대사로 또 설명하는 건 낭비라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대사의 첫 번째 목적은 영상만으로 표현이 어려운 전개나 캐릭터의 감정을 보완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겠지요. '보완'이 아니라 '강화'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명대사를 떠올려볼까요? 

좋은 대사는 캐릭터의 성격과 그 변화, 그리고 장면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이는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더 쉽고 강하게 만들어 주지요. One-liner라고 부르는 이런 명대사들은, 그래서 서사의 핵심 기능에 기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사들,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요?

정보 전달은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하는 식의 설명이 아니라, 자연스런 플롯의 진행과 캐릭터 간의 갈등 속에 극중 필요한 정보가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쓰기는 어려운데요, 자연스럽게 정보를 흘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냥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시청자들은 꽤 똑똑하고, 스스로 비어있는 정보를 찾아 상황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캐릭터의 말투와 습관이 반영된 대사가 좋습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독특한 말투, 어휘 등을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지요? 이건 단지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을 돋보이게 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말투를 갖게 되어 가장 좋은 점은, 아까 말씀드린 One-liner를 쓰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명대사를 쓰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왕도가 없기 때문이지요. 유일하고, 희미한 단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캐릭터들 각각이 갖고 있는 말투와 언어습관을 살리는 것입니다.  각 캐릭터가 고유한 말투와 어휘를 사용하게 되면, 작가 입장에서는 “이 상황에서 이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 말할까?”를 좀 더 정확히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특정 상황에 딱 들어맞는 임팩트 있는 문장, 다시 말해 One-liner를 빠르게 떠올릴 수 있어요.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더해볼까요? 말투나 즐겨 쓰는 어휘는 그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대변합니다. 작가가 그리는 캐릭터의 말투가 개성이 있다면, 이는 그 캐릭터가 독특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보통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견해에서 비롯된 대사 한 줄은 더 강렬하고 명확한 메시지와 감정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대사를 잘 쓰는 세 번째 요령은, 서브텍스트의 활용입니다.

오늘의 대본 분석은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 씬입니다.

필요한 대사만이 들어가 있는 대본은, 아마 인류 재건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 100명이 탄 우주선의 분위기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곳에는 인간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거창하게 '영혼'이나 '예술'이라고 하지 않을께요. 그건 바로, '쓸데없음'입니다.

1992년, 살벌한 할리우드에서는 '대본의 초반 10페이지 안에 캐릭터를 소개하고 사건을 일으켜야한다'는 엄숙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원칙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자신이 직접 쓰고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의 첫 씬에서부터 필요없는 대사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합니다. 무려 11페이지를 꽉 채워서요.

>> 저수지의 개들 오프닝 씬 보러가기 <<

이 오프닝 씬이 이후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영화를 쓰고 만드는데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는 여기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열한 페이지의 수다가 모두 필요한 대사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캐릭터들의 관계와 각각의 성격을 표현하고, 종업원에게 팁을 주지 않겠다는 Mr.Pink 의 행동이 이후 그의 행동에 복선이 된다는 식이지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오프닝 씬의 쓸데없음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마돈나의 노래에 대한 경박한 비평에서 시작해, 종업원에게 팁을 줘야하냐 말아야 하냐의 논쟁으로 끝나는 이 첫씬을 볼 때마다, 저는 '필요한 대사'와 '불필요한 대사'라는 이분법이 어쩌면 시드필드나 맥키, 블레이크 스나이더 선생님이 말씀하신 '좋은 대사'의 참뜻을 잘못 이해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 쓴 ‘불필요한’ 잡담은 분위기를 만듭니다. 일상적인 잡담이 가지는 현실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극중 이입을 훨씬 강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잡담들은 또한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들이 화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필요없는 장면의 가장 큰 필요는, 이 장면 직후 이어지는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알고보니 이들은 강도였고, 보석상을 습격하고, 일이 꼬이게 되지요. 첫 씬의 쓸데없음 덕분에 우리는 타이틀 씬 직후 이어지는 사건에 바로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 기여하지 않는, 그래서 필요없는 대사들은 어쩌면 그 필요없음으로 인해 이야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더 많습니다. 러닝타임이 길고, 이야기도, 캐릭터도 영화의 그것보다 많이 나옵니다. 여러 개의 플롯들이 섞어야 하고, 캐릭터들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현실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OTT 시대에 영화는 점점 길어지고, 드라마는 점점 짧아지고 있지요.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져 이게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애매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필요'를 말할 수 있을까요? 어제의 '필요'가 내일의 '필요'와 같을까요?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준다던가, 캐릭터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는 지양하는 편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 기여하지 못해 필요없는 취급을 대사들은, 수다는, 잡담은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에 기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딱히 쓸데는 없지만, 그 쓸데없음으로 현실을 좀 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드는 드라마나 영화처럼요.